맨 위쪽에는 사각 격자문양 안에 山.卍문양이 새겨진 4개의 원형이 있고, 중간에는 五鶴과 鳳凰 문양으로 장식했는데, 4마리 학이 사방을 에워싸고 1마리 학을 정중 간에 두고 그 사이에 석류, 새, 과일, 꽃과 바위 위에 앉은 봉황을 장식했다. 맨 아래쪽에는 풀이 나는 형상으로 삼색 선으로 장식하였다. 매우 귀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다.
모담(毛毯)은 털실과 면실을 섞어서 짠 조선시대의 깔개이다. 평직의 모직물 표면에 직조 방식이 아닌 안료로 그림을 그려 문양을 표현하고 선단을 대어 방장(房帳) 형태로 꾸몄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모직물을 만들었는데, 이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탑등(㲮㲪), 구유(氍毹), 계담(罽毯), 모전(毛氈)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주로 신분이 높은 양반 계층에서 사용했고 전(氈), 계(罽), 담(毯), 화채담(畫彩毯)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깔개나 장막으로 이용했다.
모담의 다른 이름으로는 [朝鮮綴], [朝鮮毛綴]이 있다. [조선철]은 일본에서 모담을 부르는 명칭으로 16세기 이후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해지며 본격적으로 직물 수출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에 전해진 모담은 일본 상류가정의 애장품으로 사용되거나 해마다 열리는 기온마쓰리에서 수레의 외관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에서 모담의 모습은 17세기 이전의 초상화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고, 17세기 이후에는 온돌의 보급으로 주거 환경과 취사도구 등 전반적인 생활 문화가 바뀌면서 모담이 점차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모담은 현재 남아있는 수가 드물어 매우 귀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출품물인 모담은 18세기 모담에서 주로 발견되는 오학문 도안으로 제작 되어 시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한성미술품제작소는 왕실 용품을 비롯한 조선 고유의 미술품 제작과 일반 수요에 부응한 염가 판매로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1908년 10월 왕실(창덕궁)로부터 6만 원을 하사받아 설립된 민간위탁경영체제의 미술품 제작공장이다. 1913년 6월 이왕직으로 인수되었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1922년 8월 상업자본가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에 의해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로 변경되었다. 이화문상표를 사용하면서 이왕직미술품제작소를 계승한다고 공표하여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였다.
1920년대 후반 세계공황으로 인한 타격, 1930년 도미타 기사쿠의 사망으로 인한 자금 유출로 1936년 7월 공식 해체되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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