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초 금수현(1919~92)은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부산에서 윤이상과 ‘노래하자회’를 만들어 매주 한 곡씩 노래를 가르치는 ‘국민개창운동’을 벌었으며, 1970년 잡지 ‘월간 음악’을 만들어 음악에 대한 정보와 음악계 소식을 알렸다.
낙초 금수현은 장보고의 활동무대를 수십 차례 답사하고 극 중 이름 하나까지 정확하게 고증하려 자료를 거듭해서 검토하며 대본을 쓰고, 해마다 1막씩 만들어 7년만인 1991년 연주시간 2시간 10분, 총 3막으로 구성된 561쪽의 악보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장보고’가 공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92년 건강 악화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