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 ‘물가의 연꽃’이라는 뜻의 용주사(蓉洲社)라는 시사회를 결성하여 활동한 16인의 시화(詩畵)가 깃들어진 시화축이다. 칠언율시를 남긴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 문백(文伯) 정원달(鄭遠達), 백상(伯祥) 이의봉(李義鳳) 등 16인의 시화가 있다. 당대의 대사헌 이조판서 실록 총재관을 지낸 신재식(申在植)과 우의정 및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를 역임한 김이교(金履喬), 그리고 우의정 박규수의 외종조 유화(柳訸)의 시평이 있다. 5미터 70cm의 긴 두루마리 종이 위에 펼쳐진 19세기 초 고위 관료들의 시사회 활동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푸르름이 녹아 있는 정원에 맑음을 맛본다’는 ‘취원청상(翠園淸賞)’이라는 문구로 시작을 하여, ‘뛰어난 문채가 샘에서 솟아오르다’는 뜻의 ‘일조천용(逸藻泉涌)’의 묵서로 첫머리를 장식하였다. 이 서화축은 용주사(蓉洲社)라는 시사회에서 작성된 된 것이다. 두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매화나무 그림과, 소나무 그림과, 대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구름은 하얗고 산은 푸른데 냇가의 물이 흘러 바위에 부딪쳐도 바위는 그대로 서 있도다.”
“소나무는 추위를 견디며 빼어나고 산들산들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는 수척해 있고, 장수하고 무겁지 않은 바위들은 못 생겼지만 오래됨이 있어 이들은 세 가지 유익한 벗이다.” 이것은 황산곡(黃山谷)의 송죽석(松竹石)인 소나무와 대나무와 바위를 찬한 것이다.
전서와 예서로 각각 쓴 글이 있으며, 낙서(洛瑞)라는 호를 가진 류거사(柳居士)가 쓴 “북원에 아름다운 약속이 있어 바람의 정을 이끌어 내니”라는 글에서 붉은 비점을 찍은 홍평(紅評)은 참의(參議) 신재식(申在植)이 평가를 하였고, 황색의 비점을 찍은 황평(黃評)은 상서(尙書) 김이교(金履喬)가 하였고, 녹색으로 비점을 찍은 녹평(綠評)은 승선(承宣) 유화(柳訸)가 평가를 하였다.
난초의 그림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향기로움을 난초가 머금고 있으니 다만 스스로 알뿐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 사가시인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1754-1825)
조선후기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재(惕齋)·강산(薑山)·소완정(素玩亭)·석모산인(席帽山人). 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을 증직 받은 이원(李遠)이다. 외가에서 7년을 지내고 12세가 되던 1765년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경전(經典)을 읽기 시작했다. 16세부터는 문장가 박지원(朴趾源)을 만나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1770년(영조 46)에는 귀양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잃었다. 이때까지 그는 일정한 스승이 없이 글을 배웠으며 금석(金石)·육서(六書) 등에 대해 두루 수업을 받았다. 한편 이서구는 사가시인의 한 사람으로 한자의 구조와 의미를 연구하는 데에 조예가 깊었으며 글에 쓰이는 전고(典故) 또한 널리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예에도 뛰어났다. 사가시인 중 이덕무·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 서얼 출신인데 반하여 그는 유일한 적출이었고, 벼슬도 순탄하게 올라갔다. 홍대용(洪大容)과 박지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이덕무·유득공·박제가 등의 실학파 문인들과 사귀었다.
○ 갑과에 장원한 문백(文伯) 정원달(鄭遠達, 1735~)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원장(元帳)이다. 별칭으로는 원장(元帳),문백(文伯)이다. 우의정 정우량(鄭羽良)의 아들이며, 정원달(鄭遠達)[1735~?]은 1735년(영조32) 정시3 갑과에 장원 급제를 하였고, 또 정치달의 형이라는 이유로 ‘삼세금방(三世金榜)’, ‘삼세책문 내계기조(三世策文 乃繼其祖)’, ‘임신충장 공존사직(壬申忠章 功存社稷)’이라는 어필을 하사받았다. 그리고 이후에 문학(文學), 경기 암행어사, 문겸(文兼), 재령 군수, 공조 참의 등을 역임한다. 1760년(영조 36) 정원달을 비롯한 유신(儒臣) 6명이 어필을 받게 되는데, 그중 정원달에게는 ‘문충의 아들이요, 정간의 손자가 된다[文忠之子 貞簡之孫].’라는 글이 하사되었다. 정제(鄭濟)가 인천 지역으로 내려온 이래로, 연일 정씨 일가는 인천을 재지 기반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학동, 도곡 일대로 그 생활기반을 확대하였다.
○ 고금석림(古今釋林)을 완성한 백상(伯祥) 이의봉(李義鳳, 1733-1801)
조선후기에, 좌승지, 사간원대사간,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상봉(商鳳). 자는 백상(伯祥), 호는 나은(懶隱). 광평대군 여(廣平大君璵)의 후손이며, 휘중(徽中)의 아들이다.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를 지내고, 1773년(영조 49)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도청(都廳)·부수찬·교리 등을 거쳐 1788년(정조 12) 10월 신천군수가 되었다. 1791년에 검토관 겸 경연관(檢討官兼經筵官)을 지내다가 그 이듬해 10월 좌승지가 되었다. 증주어록해(增註語錄解)를 편찬하였다. 그 뒤 다시 이 책의 내용을 수정, 증보하여 1789년 40권으로 된 고금석림(古今釋林)을 완성하였다. 이 책은 무려 1,400여 종류의 참고문헌을 통한 광범위한 고증을 거쳐 동양의 여러 언어와 문자에 관한 사서(辭書)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의 학자적 위치와 학문적 업적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실록총재관을 역임한 신재식 (申在植,1770~)
조선후기에, 이조참판, 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중립(仲立), 호는 취미(翠微) 순조5년(180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의 벼슬을 거쳐 1818년 대사간에 이어 강원도관찰사·이조참의를 지내고, 1826년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5년 대제학에 오르고 다음 해 익종(翼宗)의 태실가봉(胎室加封) 때 제조(提調) 겸 서표관(書標官)이 되고 동지사(冬至使)의 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이조판서·실록총재관(實錄摠裁官)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 조선 마지막 통신사 역임 김이교(金履喬,1764~
1832)
조선후기에,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세(公世), 호는 죽리(竹里). 할아버지는 대사간 김시찬(金時粲)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김방행(金方行)이다. 순조6년(1806) 부사과(副司果)의 직첩을 환수 받고 동부승지·이조참의·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10년 10월 10일 일본통신사에 임명되었다. 1811년 2월 12일 통신사의 사명을 띠고 출발해 5월 22일 부사(副使) 이면구(李勉求)와 함께 대마도부중(對馬島府中)의 객관(客館)에서 동무상사(東武上使) 미나모토[源忠岡]와 부사 후지야스[藤安薰]에게 국서전명(國書傳命)을 거행하고 공사예단(公私禮單 : 공적 혹은 사적으로 주는 외교상의 예물 명단)을 전달하였다.
사명을 다하고 같은 해 7월 3일 대마도를 떠나 부산에 도착했고, 7월 26일에 왕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이 통신사가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였다. 1831년 우의정에 올랐는데, 이 때 영의정과 좌의정이 모두 공석이어서 한 때 국정을 도맡아 수행하였다. 글씨를 잘 썼다.
○ 세자시강원 역임 유화(柳訸, 1779~1821)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화지(和之) 1796년 훈련첨정, 1819년 교리, 홍문관 응교, 동부승지, 우부승지, 세자시강원의 정4품 관직인 필선 (弼善) 등을 역임하였다. “우의정 박규수는 가세가 빈한하여 어려서는 주로 아버지에게 수학하였고, 외종조 유화(柳訸)의 서루에서 날마다 책을 뒤적이며 놀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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