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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박진우(朴鎭雨)의 [민족의 꽃 윤택진] > 제7회 고완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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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박진우(朴鎭雨)의 [민족의 꽃 윤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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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미문사(MI MOON SA), 1959.6
사이즈 18x13cm,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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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정보

권두에 윤택진의 교복 입은 사진이 있으며, 권말에 소년열사 윤택진의 생생한 기록을 그린 작가의 소감이 실려 있다. 

보존상태 양호하다.

 

박진우(朴鎭雨, 1936~)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1950년대 중반 만화를 시작해 [민영환]·[계백장군]·[검호 날쌘돌이] 등과 1960년대 [현해탄]·[아!백검] 등 주로 사극과 무협을 소재로 한 어린이 만화를 그렸고, 학습만화로 [천자문]·[만화 명심보감] 등을 발표했다.(만화규장각)

 

신문원사에서 간행한 박진우의 [검호 날쌘돌이](1958)와 신동우의 [혁명 날쌘돌이]는 표지 디자인이 유사하고 ‘소년소녀문고’ 표시가 동일하여 ‘박진우’는 ‘신동우’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윤택진(尹澤振·尹鐸振, 1903~1920)은 황해 재령군 남율면(南栗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

1919년 2월 윤택진은 평북 정주군(定州郡) 오산학교(五山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7일경 윤택진은 자신의 집에서 오산학교 교사 최영창(崔永昶, 이명 崔永和)을 비롯한 홍봉수(洪鳳守),안영희(安英熙),김두영(金斗榮) 등과 함께 수백 개의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러던 중, 28일 최영창이 일본 헌병대로 끌려갔다. 다음 날인 3월 1일 정오 12시, 남율면 해창리(海昌里) 교회당 앞에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윤택진은 독립선언서를 읽은 후 만세를 선창하고는 교회당 종을 힘차게 울렸다. 이 종소리를 신호로 앞 산과 뒷 산, 그리고 집집마다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윤택진은 선두에서 시위행렬을 이끌었다.

 

한편, 전날 헌병대에 붙잡혀 간 최영창도 탈출하여 미리 헌병대 이웃집에 준비해 두었던 석유를 뿌리며 헌병대를 불지르는 한편, 헌병대 정문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또한 시위 군중들은 면사무소를 점령하고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이처럼 시위가 격렬해지자, 오후 4시경 재령헌병대에서 기마 헌병 수십 명이 출동하여 주동자 40여 명을 붙잡아갔다. 그러나 윤택진은 피신하여 두 달 가까이 숨어지내다가 마침내 붙들리고 말았다. 윤택진은 해창헌병대에서 재령-해주를 거쳐 평양헌병대로 이송되었다. 이송될 때마다 각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윤택진은 끝내 다른 동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잡힌 지 1년 여 만인 1920년 4월 16일경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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