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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에도시대 유학자 미나카와 기엔(皆川 淇園)이 조선통신사 일원이었던 겸천(兼泉) 이해문(李海文)에게 보낸 편지 > 고문헌 특별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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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에도시대 유학자 미나카와 기엔(皆川 淇園)이 조선통신사 일원이었던 겸천(兼泉) 이해문(李海文)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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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미나가와 기엔(皆川 淇園, 1734~1807)
사이즈 27.5x3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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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정보

편지는 기엔이 음력 4월 초3일에 겸천(兼泉) 이군(李君)인 이해문(李海文)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기엔 자신은 이군을 방문하려고 하였는데, 일에 매여 서 뜻대로 하지 못하여 매우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뒷날 마땅히 히라카타역(枚方驛)에서 맞이할 것이라고 하였다. 지난 번에 육현금(六絃琴) 연주 소리를 들었는데, 형태가 매우 기이하여 화인(畵人)에게 명하여 그 그림을 그리게 하여 매방역에서 주겠고 하였다. 만나는 날이 실로 살면서 가장 행복한 일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 끝에 기엔의 성명이 쓰여 있고,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 이해문(李海文, 1712~1772)의 호는 겸천(兼泉)이고, 영조33년(1757) 무과 정시(庭試)에 급제하였다. 훈 련원 부정(副正)으로 임명되었다가 곧 강령 현감(康翎縣監)이 되었다. 훈련도감의 무겸(武兼), 훈련주부(訓練主簿), 비변랑(備邊郞), 중추경력(中樞經歷) 겸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761년 정평 부사(定平府使)로 나갔다. 1763년 행부호군(行副護軍)이 되고, 그해 11월 조엄(趙曮)을 정사(正使)로 한 조선 통신사행에 정사의 배를 검사하는 명무군관(名武軍官)으로 동행하여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듬해 5월 부산포로 귀국한 다음 11월에 다대포 첨사가 되었다. 이때 통신사행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세견선의 출입을 단속하고 밀무역을 철저히 근절하여 그 공로로 중앙 무관직인 오위장으로 영전하였다. 조엄의 평가에 의하면 이해문은 무신이면서도 시를 잘하였다. “장비(張飛)와 같다”는 일본인들의 평가나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은 강건하다”고 한 영조(英祖)와 관료들의 평을 통해 이해문의 용모와 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하여 현명하게 처신하여 양리(良吏)라는 평을 들었고, 임금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 미나가와 기엔(皆川 淇園)은 에도시대 유학자이다. 한시문과 주자학, 고의학과 고문사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방법론을 차용하여 독자적인 음운학을 형성하였다.

문하의 제자가 3천명에 달했다는 대학자이다. 그는 시서화에도 능하였으며, 당시 여러 방면의 지식인 및 화가들과 교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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