米芾, 董其昌, 翁方綱, 柳公權, 李邕의 글씨를 임모한 서첩이다.
방산은 坤 권 말미에 서첩을 엮은 이유를 적었다.
“나에게 서체의 법을 구한 즉 내가 제현들의 서체의 뜻을 임모하여 손과 붓이 가는대로 써 보았으나, 감히 나의 서체가 고인들의 모범이 될 수 없다. 부득이 부탁을 하여 사양할 수 없어 쫓기듯 썼으니, 만일 이 서첩을 보는 자는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을묘년 늦 봄 하순에 대릉(지금의 서울 정릉) 춘우재에서 쓰다. 방산거사 윤정기 기록하다”
乾 권 앞뒤에 ‘잔고잉복(殘膏賸馥)’이, 坤 권 앞뒤에 ‘함영저화(含英咀華)’가 大字로 쓰여 있다.
‘남은 기름과 남아 있는 향기’란 뜻인 ‘잔고잉복(殘膏賸馥)’은 자신이 쓰고 남은 좋은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의 훌륭한 시구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신당서(新唐書) [문예열전 상 文藝列傳上] 두보(杜甫) 찬(贊)에 이르기를, “‘殘膏賸馥 沾丐後人多矣” “잔고와 잉복을 후세 사람에게 준 것이 많았다.”에서 옮겼다.
‘함영저화(含英咀華)’는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沈浸醲郁 含英咀華 作爲文章 其書滿家”라는 한 구절이 나오는데, “그윽하고 아름다운 옛글의 깊은 내용에 푹 젖어서 그 묘미를 머금고 씹어서 문장을 지어내니, 그 글이 집 안에 가득하다”에서 따왔다.
* 방산(舫山 윤정기(尹廷琦, 1814~1879)
조선말기의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경림(景林), 호는 방산(舫山),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부친은 참봉 윤영희(尹榮喜)이며, 모친은 정약용(丁若鏞)의 딸 나주정씨(羅州丁氏)이다. 어려서는 조부인 윤서유(尹書有)에게서 학문을 익히고 장성하여서는 외조부 정약용으로부터 수업하였다.
정약용의 학문적 영향을 받아 당대에 문명을 날렸으며, 특히 시문에 능해 북경(北京)의 학자 주당(周棠)에게서 “백홍(白虹)의 기상이 있다.”는 극찬을 받았고, ‘방산(舫山)’이라는 호까지 받았다. 당시의 거경(巨卿)석학(碩學)들이 종유하기를 원하였는데, 권돈인(權敦仁)·이명적(李明迪)·한계원(韓啓源)·최우형(崔遇亨)·김병학(金炳學)·윤정현(尹定鉉) 등이 모두 윤정기의 문우이다. 주위에서 여러 차례 사진(仕進)을 권하였으나 이에 불응하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글씨를 잘 썼다.(한국역대서화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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