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고보 재학 시기인 1933년~1935년 간 농구·배구·유도·축구·야구 등 5개 종목의 교내 대회 사진 등이 실려 있는 앨범으로, 김옥균 후손 김안진(金安鎭)의 앨범으로 전해진다. 경기도 가평에서 유학하여 1932년에 졸업한 한글학자 한갑수(韓甲洙, 1913~2004)
가 선배에 해당한다.
고창군민의 모금운동으로 완성된 2층 벽돌 건물이 사진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현재 고창고등학교 구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민족교육의 산실 고창고보에서 실시한 다양한 체육 활동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교내 농배구 우승기념’ 단체사진
1933.11.11
- ‘교내 유도대항시합 우승기념’ 단체사진
1934.2.21.
- ‘1934년 9월 14일 언제 또 다시’ 단체사진
- ‘1934년 9월 14일 언제 또 다’ 단체사진
- ‘송별기념’ 단체사진
1934.12.18.
- ‘송별기념’ 단체사진
1935.4.20
- ‘제5회 농구·제3회 배구 교내대회 우승기념’ 단체사진
1935.5.4
- ‘제1회 교내 축구대회 우승기념’ 단체사진
1935.10.5.
- ‘야구부원’ 단체사진
- ‘고창고보 부여탐승단, 의혈성지 낙화암 차져’ 단체사진
- ‘낙화암에서’ 단체사진
- 外
* 고창고등보통학교
“북 오산, 남 고창”은 일제강점기 초기 대표적인 민족교육 학교 두 곳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와 전라남도 고창의 고창고보이다. 흥미롭게도 고창고보의 전신은 일본인 마스도미가 1919년 세운 오산학교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교육자였던 마스도미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사죄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재정난으로 오산고보가 폐쇄 위기에 몰리자 고창군민들이 나섰다. 천석꾼 지주들을 중심으로 5,500명의 기부금을 모아 오산고보를 잇는 고창고보가 1922년 설립되었다. 고창고보는 새로운 교육을 실천했으며, 1937년 전주 신흥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자 고등과 전체 학생을 받아들였다. 고창고보 강당은 1939년 지어졌으며,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고창고보 건물 가운데 당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학교 하면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가 꼽힌다. 1907년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그런데, 남쪽에도 오산학교가 있었다.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오산리에 1919년 세워진 사립 오산학교다. 정주의 오산학교는 다섯 오(五) 자를 쓰고, 고창의 오산학교는 자라 오(鰲) 자를 쓴다. 설립 주체와 설립 경위는 다르지만, 두 학교는 민족교육을 대표하는 사립 중등교육 기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북 오산, 남 고창”이라는 표현은 일제강점기 두 학교의 위상을 잘 드러내준다. 호남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중등교육 학교인 고창 오산학교는 1920년대 들어 고창고등보통학교가 되었다.(고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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