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부 부산면 기동리(基洞里)에 거주한 문익점 후손 문기학(文基學), 문대현(文大鉉), 문광현(文光鉉) 등과 김기성(金基成), 등 관련 두 집안의 가옥 토지 및 매매, 가문 선산 및 묘지 수호, 관청의 판결 및 소지, 망군대(望君臺) 및 망군정(望君亭) 등 표시가 수록된 제암산(帝岩山) 산도 등이 수록된 고문서들이다.
주요 물목은 다음과 같다.
(1)충훈부에 올린 남평 문씨 산송 소지
병자년 10월 충훈부에 올린 소지로 용담현령과 파주목사를 지내고 병조참판 풍암공(風菴公) 문위세(文緯世,1534~1600) 어른께서는 임진왜란 때 공신으로 훈부(勳府)에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그 아들인 임진란 공신 희개(希凱,진사) 고창현감 공조참의를 지낸 것이 공신 훈록에 나타나 이분들의 분묘가 본부(장흥) 부산면(夫山面) 춘정리(春亭里)에 나란히 모셔져 있으며 그곳에는 조상님이 거처하시던 망군대(望君臺) 및 망군정(望君亭) 옛터가 남아 있습니다. 지난 무술년에 김익용(金益溶)이라는 자가 부유함을 믿고 호기를 부리며, 저희의 집터를 샀다고 칭하면서 묘역의 소나무와 가래나무 수십 그루를 마음대로 베어냈습니다. 심지어 망군대(望君臺)의 비석과 묘비를 땅에 묻어버리고 그 자리에 임의로 도둑 매장(偸葬)을 하였습니다. 또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위토답과 산기슭 땅을 가로채기 위해 문서를 위조하는 등 차마 못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가옥 매매 내용과 망군대(望君臺) 등 위치가 수록된 제암산(帝岩山) 산도
장흥부 부산면 기동거주 김기성 (基洞居住 金基成)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기와집 매매 대금 돈 400냥을 무술년 12대 종손 문기호(文基五)에게 팔았다는 내용이 담긴 제암산(帝岩山) 산도가 있다. 여기에 망군대(望君臺) 및 망군정(望君亭) 위치가 나타나있다.
(3)을사년 3월 초1일 사포주인(沙浦主人)에게 생선을 납부하라고 통보한 장흥부 관청 문서
관청의 새로 부임한 관리 등을 환영하는 행사나 연회 때 즉시 사용할 생선(生魚)을 금일 오전까지 지체 없이 가져오도록 하라 혹시라도 지체되면 법률적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4)사노가 소유했던 땅을 다시 사들인 문씨 가문의 명문
동치 7년(1868년) 문기학(文基學) 토지 매매 명문
논 두 마지기(二斗落)를 우선 사노(私奴) 신유손(申有孫)이 소유하고 있다가 김기성에게 값 열한냥을 받고 팔았다. 위 논은 본래 우리 집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문중에서) 다시 무효로 하고 되찾아오기로 논의하였다. 이에 본래 가격인 열 냥을 지불하고 다시 사들여(還買) 이 문서를 작성하여 기록한다.
(5)임자년 12월 초1일 전라도 사투리 방언 등이 수록된 한글 물목
전라도 사투리 가새(가위) 1개, 나락(벼) 열말,거울 1개, 요강, 대구 3개, 등 가다양한 물건의 수량과 가격이 나타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