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이씨(靑海李氏)로 강화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지식인인 이광도 집안 고문헌이다. 이광도는 숙종34년(1708) 식년시 을과(乙科)에 급제했다. 기록에 보면, “숙종·경종·영조 세 임금을 섬겼는데, 승진하는 데 뜻이 없고, 오로지 백성을 돌보는 데만 뜻을 두었다. 대간의 반열에 15년 동안 있으면서 계속해서 그 당시의 잘못된 폐단을 지적하는 글을 올려, 칭찬과 함께 끊임없이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하라는 임금의 비답(批答)을 받았다. 간현(艮峴)에 살고 있었는데, 임금이 여러 번 사간(司諫)의 벼슬을 내리고 역마(驛馬)를 보내 불렀다. 안산군수(安山郡守) 등 여러 부사직을 역임하고, 종성부사(鐘城府使)로 임명되었다가 근무지에서 병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에서 강화학파나 소론 인물들의 행적을 다룰 때 그의 강직한 성품이 언급되곤 한다.([연려실기술] 별집 제15권 - 당적변(黨籍辨) - 소론(少論) 또는 인물 편목 중 '정제두(鄭齊斗)'와 그 문인들을 다룬 계보 항목)
원교 이광사(1705~1777)가 강화도에서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에게 양명학을 배우며 이광도 집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출품된 물목은 다음과 같다.
○ [간독 簡牘 1]
30.6x23cm, 40쪽
이광도(李廣道, 1673~1737)가 부모와 도사(都事, 종5품)인 아들 연경(衍慶, 1704~45)과 주고받은 서신 등이 담겼다. 이밖에 景說, 巨源 등 이름도 자주 언급된다.
○ [간독 簡牘 2]
31x22.3cm, 36쪽
이광도 관련 문서와 서신이 주로 담겼다.
○ [간독 簡牘 3]
32x22.7cm, 38쪽
○ [간독 簡牘 4]
43x23.7cm, 22쪽
아들 연경(衍慶)이 보낸 편지가 주로 담겼다.
○ [기묘 사마방목 己卯司馬榜目]
己卯年(1699)
20.3x31.8cm, 39장 목판본
○ [무자년문무과방목 戊子年文武科榜目]
戊子年(1708)
33.5x21.5cm, 28장 활자본
이광도(李廣道)의 대과 을과 4위 방목이다.
수허재 홍계적의 이름도 있다.
○ [己亥至月二十一日 辛丑成冊于艮村精舍]
40.5x26cm, 7장 지본묵서
신축년(1721) 간촌정사에서 엮은 문헌.
○ [오례의초 五禮儀抄] 건·곤 2책
전주감영, 영조19년(1743)
35.8x22.3cm, 목판본
이광도 소장인이 있다.
○ [청흥군 청시장 靑興君請諡狀]
28x20.7cm, 16쪽 필사
이광도의 외조부인 청흥부원군 심지원(沈之源, 1593~1662)에게 시호를 내려줄 것을 청하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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