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淸陰) 김상헌이 글을 짓고, 신독재(愼獨齋) 김집이 글씨를 썼으며, 7대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이 전서(篆書)로 머리글을 썼다.
○ 송유(宋愉,1388-1446)
조선전기의 문신. 호는 쌍청당(雙淸堂). 조부는 사헌부잡단(司憲府雜端) 송명의(宋明誼) 로, 공정한 재판과 지조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등 제현(諸賢)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송극기(宋克己)이고, 어머니 고흥유씨(高興柳氏)는 유백준(柳伯濬)의 딸이다. 4살 때 아버지가 죽었는데, 외조부가 딸이 일찍 과부가 된 것을 불쌍히 여겨서 재혼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시부모에게 의탁(依託)하여 정절(情節)을 지켜서, 1787년 절의로 회덕(懷德) 정절사(靖節祠)에 배향되었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강직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기상이 호탕하고 학행(學行)이 잘 갖추어졌다. 12세에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는데, 13세에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가 붕어(崩御) 한 뒤 위패가 태조묘(太祖廟)에 부(附)해지지 않자 이를 한탄하는 글을 지어 올리고 관직을 버렸다. 이후 고향 회덕으로 돌아와 학문에 정진하였다. 조그만 정사(精舍)를 지어 난계(蘭溪) 박연(朴堧)에게 청하여 '쌍청당(雙淸堂)'이라 편액하고 필연(筆硏)과 금기(琴碁)로 여생을 보냈다. 이 때문에 후인들이 쌍청처사(雙淸處士)라 부르기도 하였다. 은진송씨가 회덕에 정착한 것은 조부 송명의 때부터이지만 은진송씨가 회송(懷宋)이라고 칭해질 만큼 지역사회의 깊은 연고를 가지게 된 것은 송유 때부터이다. 송유가 회덕 배달촌(白達村)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송촌(宋村)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세종28년(1446) 향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회덕 남쪽 판교리에 있다. 부인 손씨(孫氏)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송계사(宋繼祀)는 판관(判官)을 지냈고 지평(持平)에 추증되었으며, 송계중(宋繼中)은 사과(司果)를 지냈다. 지평(持平)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7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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